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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파수꾼이 들려주는 사람이야기

새는 숲의 파수꾼이다.
그래서 새의 움직임을 보면 숲의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새의 소리가 위험을 예감한 경고음인지, 행복의 춤을 추는 미뉴에트인지, 짝을 부르는 세레나데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1.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난 우리는 새소리를 듣기위해 눈꼽만 겨우 떼고, 가져간 여벌옷을 모두 입은 채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고맙게도
청렴한 공기를 가르며 고요를 깨고 먼산 너머에게 건너오는 첫번째 새소리가 들렸다.
매사촌이었다.

교수님은 매사촌은 흔하지 않은 여름새이며, 한반도의 서북부와 중부 이북의 산악지대에서 번식한다고 알려져있다고 했다.
지리산에서 만나다니… 뜻밖에 수확이란다.

우리는 더 많은 새들을 만나기위해 조금씩 그리고 아주 조용히 이동했다.

노랑턱맷새와 휘파람새 ↑

누구일까? 어느 방향에서 들릴까? 땅에서 아니면 나뭇가지에서 혹은 나무꼭대기에서 나는 소리일까?

모든 가능성을 상상하며 우리는 숲길을 걸었다.
스스히 여명이 밝아올수록 온갖 새소리가 숲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벙어리뻐꾸기, 휘파람새, 곤충소리를 닮은 숲새,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동고비가 노래를 했다.

이른 아침마다 우리집 마당에 놀러와 밤새 잠든 초목과 나를 행복하게 깨우던 녀석은 바로 동고비였구나!
소리에는 익숙했지만, 이름을 알지못해 무척 답답했는데…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슬 맺힌 쇠뜨기↑

나는 오감의 기능을 오직 청각으로 모으며 새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기위해 더 집중했다.
갑자기 독보적으로 들리는 검은등 뻐꾸기의 노래소리.
한번 들으면 쉽게 잊어지지않을만큼 차별화되는 소리. 네 마디의 노래소리는 홀딱벗고, 홀딱벗고, 홀딱벗고.
검은등 뻐꾸기 소리를 옛 조상들은 ‘홀딱벗고’로 들었을까?
왜?

상상의 나래 끝에서 만난 건 1997년 영국영화
‘풀 몬티(The Full Monty)’였다.
‘풀 몬티’는 영국 속어로 ‘홀딱 벗다’는 뜻이다.
영국에서 마지막으로 폐쇄되었던 탄광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중년 남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제목 그대로 옷을 벗고 스트립쇼 무대에 서는 과정을 그렸다.

탄광이  폐쇄되던 날 한 광부는 “한 시대의 종말”이라면서 “우리는 이번 주에 역사가 된다. 영국은 석탄 위에 세워졌다”고 했었다. 자부심과 긍지, 그리고 노동자들의 실의와 좌절감이 느껴지는 그의 말이 새삼 생각났다.

우리는 새의 언어를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느낌으로 새의 소리를 들을 수는 있다.
영국광부의 삶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을 읽어내는 건 무리일까?
백년전 아니 천년전에도 검은등 뻐꾸기는 숲에서 노래했으리라.

홀딱벗고, 홀딱벗고, 홀딱벗고라고.

우리는 한 시간 남짓대는 시간 동안,
흰배지빠귀, 휘파람새, 어치, 노랑턱맷새, 청딱따구리, 산솔새, 곤줄박이, 친박새 등등
십여 종의 새를 만날 수 있었다.

한 해 중 가장 많은 새소리를 접할 수 있다는 오월.
지리산을 오르면서, 자신의 목소리는 잠시 멈추고 두 귀를 자연과 교감하기위해 온전히 내어주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러면
나의 침묵이 곧 내가 미쳐 깨닫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특별한 기회를 주며,
이 경의로운 자연에 탄복하게 되고, 끝없는 상상의 날개 끝에서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만족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

이 평화로움이 돌연, 무서운 상상을 만들게 했다.
어느날 갑자기 숲에서 어떤 새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지?
생태학자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처럼.

숲이 아침마다 새들의 변주곡을 들려준다면 그곳이야말로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공간이다.

A forest is in an acorn.
(도토리 하나에서 숲이 시작된다)는 말처럼,

작은 것에서 큰 일이 시작된다는 뜻으로 쓰이는 속담이지만, 결국 생태계는 안보이는 끈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지리산 기슭에서 산과 한 식구로 살아가는 이 삶에 깊이 감사했다.
그러자 휘파람새가
휘 피리링, 휘 피리링 답례를 한다.

노랑할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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