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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묵직한 역사 속을 거닐다 – 광제암문

삼 세 번이다. 천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묵직한 역사 속을 거닐어 보고 싶었다. 세상과 인연을 끊겠다는 의미의 ‘단속사’로 들어가는 입구, 암제광문을 찾아 나섰다. 넉넉한 햇살을 동무 삼아 단성면 남사예담촌에서 입석‧청계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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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동안 시간도 멈춘 듯 천천히 흘러가는 마을을 지났다. 몇 번이나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지도로 내비게이션으로 찾아보기도 했다. 입석리를 지나자 모퉁이에 야트막한 언덕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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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이씨의 재실인 금계재를 알리는 표지석이 나오자 근처에 차를 세웠다. 천천히 걸었다. 언덕을 돌아가는 걸음이 조심스럽지만 쉽사리 찾는 바위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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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들에서 거름 주는 동네 어르신께 여쭸다. 어르신은 광제암문이 아닌 ‘광제문’이라며 용두마을 벗어나는 언덕 위 ‘놀이터’ 아래라고 일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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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는 소나무 숲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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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농원 앞에 차를 세우고 길 건너로 내려갔다. 하천 쪽에 개인 집이 있어 몇 번의 인기척을 해도 전혀 반응이 없어 그냥저냥 하천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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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을 검색하고 찾아본 풍경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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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면 입을 앙다문 원숭이를 닮은 바위가 나온다. 설렜다. 바위는 하천 쪽으로 경사 심하게 내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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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위에는 소나무 한 그루 옹골차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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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향해 큰 두 바위가 합장하듯 서 있는 아래로 가자 드디어 ‘광제암문(廣薺巖門)’ 이 나온다. 바위에는 통화 13년 을미(서기 995년) 4월에 혜원이 쓰고 청선이 새겼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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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최치원(857~?)의 글씨로 알려지기도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진주목’ 들머리에서 신라말 고운 최치원이 쓴 ‘광제암문(廣濟巖門)’이라 새긴 바위와 최치원의 독서당(讀書堂)이 있었다고 적었다. 지금도 그이가 쓴 글로 아는 이가 많다.

 

여기에서 2km 더 가면 단속사가 나온다. 절이 어찌나 크던지 미투리를 갈아신고 절을 구경하고 오면 미투리가 닿는다는 말이 있다. 발우 공양 때 씻은 쌀 뜬물이 무려 10리 너머 남사예담촌까지 흘러갔다는 말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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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 쪽으로 경사진 바위는 미끄럼틀 같다. 옛적에 이곳 아이들이 멱 감으며 놀던 놀이터 구실을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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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마치 개인 정원에 광제암문이 들어 있는 모양새다. 군청에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많은 이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표지판과 출입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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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묵직한 역사 속을 거닌 기분이다. 세상의 인연을 끊는다는 단속사의 경계에서 시간이 켜켜이 쌓인 역사의 무게를 느꼈다.

 

 

산청군SNS기자단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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