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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가듯 가볍게 거닐며 겨우내 무거워진 마음을 비우는 – 단성 객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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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냥 지나친다. 왕복 4차선으로 새로 난 길은 예전의 단성면소재지를 지나지 않고도 돌아서 시원하게 내달리게 한다. 덕분에 지리산 천왕봉을 가면서도 단성면 소재지를 찾은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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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은 길이 아닌 일부러 굽은 옛길을 찾아 나선 까닭은 그저 마실가듯 시간 사치를 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5일과 10일마다 장이 서는 단성장날에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실 하듯 작은 시장을 한 바퀴 돌고 시장 건너편에 있는 단성면사무소 앞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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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영조 33)∼1765년에 각 읍에서 편찬한 읍지를 모아 성책(成冊)한 전국 읍지(邑誌)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단성면은 조선 세종 때(1432) 단계(단성 북쪽 30리)와 강성 두 고을의 이름을 따서 지금 명칭인 ‘단성(丹城)’으로 바꾸고 현감을 두었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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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관아를 찾아 면사무소에서 길을 따라 쭉 나섰다. 2차선이 아닌 좁다란 골목길을 지나면 단성초등학교가 나온다. 학교 정문 근처에는 갖가지 벽화들이 그려져 걸음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게 한다.

성내 마을회관이 나온다. 단성현이 있었던 곳에 읍성이 있었던 흔적이 마을 이름(성내리)에 담겨 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담장 같은 게 옛 읍성터라고 하는데 아쉽게도 옛 읍성 터는 찾지 못했다. 단지 지금 현재 지리산으로 가는 왕복 2차선 길이 예전 읍성을 관통했던 성문이 있던 자리가 아닐지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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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로 향하는 길을 따라 그려진 벽화는 붓으로 글을 쓰는 그림인데 ‘효(孝)’자가 씌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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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푸른 학이 솟는다’는 글이 돌에 새겨져 있다.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는 마치 앉아 쉬어가라는 듯 나무 밑동이 빙둘러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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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뒤쪽으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나란히 서 있다. 가 사이에 개교 70주년 기념비가 자리한다. 동상 옆으로 ‘몽학관’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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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석에는 ‘몽학관(蒙學館)은 단성 고을 객사에 붙여진 이름으로 월호 이도문의 문집인 월호집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단성고을 동헌 북측에 크고 높은 건물이 있는데 머리를 앞으로 내미는 형상을 하고 있어 마치 신하가 임금님 계신 북쪽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닮았다~“고 적고 있다.

현재의 몽학관이 객사자리였다면 지금의 학교터는 단성 고을 동헌이 있던 자리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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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줄에 낚싯줄에 잡힌 물고기처럼 하늘을 날아야할 연이 매달렸다.

마실 가듯, 소풍 가듯 가볍게 거닐었다. 겨우내 무거워진 마음을 비우고 오는 시간이었다. 한나절만 머물러도, 퍽퍽했던 가슴이 다시 촉촉해진다.

 

 

산청군SNS기자단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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