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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간에 머문 위인들을 만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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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군 단성면 목화시배지를 감싸고 있는 마을은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곳에는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다. 그 안에는 유명한 이들의 흔적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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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마을에 있는 배산서원(培山書院)은 햇살 따사롭게 받는 언덕에 있다. 인근 문익점 선생 위패를 모신 도천서원이 사액서원이 되면서 청향당 이원과 죽각 이광우의 위패를 따로 모셔와 덕연사를 세웠는데 대원군 때 헐렸다가 1919년 문묘와 도동사(道東祠) 강당을 지으면서 배산서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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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산서원 건립을 발의한 진암(眞庵) 이병헌(李柄憲1870~1940) 선생은 면우 곽종석 선생의 제자다. 일제강점기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고 백성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통 유교를 종교화해야 되살릴 수 있다며 ‘유교의 종교화’를 폈던 유교개혁사상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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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에는 태극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대나무와 책을 닮은 듯한 색다른 문양이 붙어 있다. 청향당과 죽각 선생을 상징하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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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 뒤로는 앙상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아래에는 강유위의 유일한 손자가 쓴 ‘복원유교지본산(復元儒敎之本山)’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청일전쟁 패배 이후 중국 내에서는 사회전반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자 했던 변법자강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을 벌인 이가 강유위다. 강유위 손자가 배산서원을 방문해 쓴 글을 새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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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서원에 문묘, 도동사와 같이 2개의 사당이 있는 것이 여느 서원과 다르다. 문묘 앞에 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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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는 강유위가 쓴 ‘배산서원’편액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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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에 오르자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이시영, 조완구, 박은식의 낙성 축문 현판을 만날 수 있었다. 백범 선생의 쓴 친필을 살펴보며 뜨문뜨문 선생의 삶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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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뒤 도동사로 계단을 올라갔다. 도동사는 이원, 이광우와 함께 친분이 두터웠던 퇴계 이황‧ 남명 조식선생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청향당과 남명·퇴계 선생은 1501년생 동갑내기로 청향당과 남명, 청향당과 퇴계는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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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향당은 남명과 퇴계와 교유했지만 남명과 퇴계는 서신을 주고받았다. 그뿐이다. 퇴계 선생은 처가인 의령에 들렀다가 진주에 이르러 남명에게 시를 남기기도 했다. 만나지는 않았다. 단성에 사는 청향당을 찾은 적이 있지만 단성에서 멀지 않은 덕산에 기거했던 남명을 찾지 않았다. 죽어서야 이렇게 남명과 퇴계는 한 곳에서 영혼으로 만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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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사를 나와 공자의 진영을 모신 문묘를 둘러보았다. 문묘에서 바라보는 인근 남강 건너편 엄혜산(226m) 만권의 책을 포개 놓은 듯한 절벽 풍경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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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시간 속에서 한 공간에 머문 위인들의 흔적을 만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산청군 SNS 기자단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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