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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농민항쟁 도화선, 산청 단성향교에 가다

단성향교1

 

멀리서 보는 산청군은 아름다운 지리산에 둘러싸여 있다. 속을 들여다보면 세상을 바꾸자 했던 흔적이 있다. 개혁 함성이 높았던 흔적을 찾아 길을 나섰다. 산청군 단성면 단성중·고등학교 쪽으로 난 길을 따라 1km가량 더 들어가면 소쿠리 모양으로 산들이 둘러싼 교동마을이 나온다.

 

단성향교2

 

마을 입구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먼저 반기는데 아래에 기선정(耆仙亭)이 있다.

 

단성향교3

 

기선정을 지나 흙담 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걷다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걷기 좋다. 한자로 씐 하바미 옆으로 한글과 영어로 쓰인 주차장 표지판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성향교4

 

주차장을 지나면 유교의 옛 성현을 받들면서 지역 사회의 인재를 양성한 지방 교육기관인 단성향교가 나온다. 단성향교는 1127년(고려 인종 5년)에 현재의 위치에 설립된 이후, 수차례 이전과 중수를 거듭하다가 1752년(조선 영조 28년)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 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 양식을 따른다.

 

단성향교5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명륜당 좌우에 있어야 할 동‧서재가 뒤쪽에 있다.

 

단성향교6

 

특히 명륜당 건물 구조가 아주 톡특해서 중앙 3칸을 2층 누각으로 구성하고 양측에 돌을 쌓아 올려 방을 만들었는데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단성향교7

 

마당에 태극기가 바람이 펄럭인다. 향교의 건축도 특이하지만, 이곳은 의미 깊은 곳이다. 1862년 임술년에 일어난 진주농민항쟁에 앞서 이 단성향교에서 먼저 농민항쟁의 횃불이 타올랐다. 단성 유생과 농민들은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곡(還穀)의 삼정문란을 혁파하기 위해 항쟁을 했다. 단성에서 일어난 농민항쟁은 진주로 비화하고 삼남 지방으로, 전국으로 퍼졌다다. 전국 농민항쟁의 맨 먼저 일어난 곳이다.

 

단성향교8

 

하얀 고무신이 햇살에 샤워하는 동재 옆으로 가면 단성현 호적장부를 보관했던 향안실(鄕案室)이 나온다.

 

단성향교9

 

오늘날 주민등록원본에 해당하는 호적대장은 조선 시대 호구 파악을 위해 지방행정단위별로 3년에 한 번씩 작성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9호 ‘단성현호적장적’은 조선 숙종 4년(1678)부터 정조 13년(1789)까지 약 100년간 산청군 관하 단성·신안·생비량·신등 4개면을 담당했던 단성현 주민들의 호구 기록부다.

 

단성향교10

 

특정 지역의 대장이 일정 기간에 전체의 모습을 빠짐없이 갖춘 것이 드물다. 조선 시대 향촌 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단성향교11

 

발걸음을 느리게 움직였다. 찬바람이 불어와 머릿속을 맑게 깨운다. 들꽃처럼 떨쳐 일어난 민중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산청군 SNS 기자단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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