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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대원사 청단청 아래서

대원(大源).
큰 근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 깨달음을 알 수 있는 곳이란 말인가.
기대와 호기심으로 대원사(大源寺)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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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로 오르는 길.
계곡에는 끝없이 제 기상과 멋스러움을 자랑하는 소나무가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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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사의 첫 입구임을 알려주는
일주문(一柱門).
일주(一柱)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일직선상에 두 개의 기둥을 세우기 때문이다.
대원사의  일주문은  촘촘하게 꿰맞추어 균형을 이루는 나무와 단청 문양 그리고 기와가 빚어내는 조화로움과  기와골에 머문 햇살이 예술성을 발한다.
일주문(一柱門)을 들어서면, 진리가 하나임을 깨닫고 잃어버린 본바탕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일주문이 세워졌다고 한다.

일주문 현판에 ‘방장산 대원사’라는 글귀가 눈에 뛴다. 절 이름 앞에 그곳의 산이름을 붙이는 것은 주소를 확실히 한다는 뜻도 있고, 부르기 좋게 한다는 의미도 있으며, 산처럼 웅장하게 하려는 뜻도 담겨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지리산을 방장산으로 표기한 것은 그 옛날 동방에는 불로초를 먹고 죽지 않는 삼신이 있다는 말을 들은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해 오도록 서복을 지리산에 보내니 그 옛 이름이 방장산이었다.

지리산의 약초가 항노화에 탁월한 것도 이와 통하는 것이리라.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 대원사 입구에서 느껴졌다.
누군가가 말했다. “오래 된 여관 같다.”
그러자,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때 지어졌으나 세 번의 화재를 겪으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문화해설사는 설명한다.

세 번의 화재.
임진왜란과 방화 그리고 여수순천사건.
여수순천사건 때 군인들에게 쫒긴 무리들이 대원사로 숨어들었고 이들을 잡기위해 대원사에 폭격이 가해지니 그로인해 이곳은 7,8년 동안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아야했던 이곳의 상처는 세월의 흔적에 가려졌건만 고요히 푸른 소나무가 생경하게 느껴지는 이 마음은 어찌할꼬.

대원사는 여수순천사건으로 파괴되어 다시 재건 된지 64년 정도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래된 고찰처럼 느껴지는 것은 청단청 때문이다.
일반 단청에서 느낄 수 있는 보색대비가 주는 화려함 대신 우아함과 고상함이 어우러져 이 또한 멋스럽다.

스님들이 공부를 한다는 선방
철탑인줄 알았더니 돌탑이라고 한다.
철성분이 많이 함유된 돌이 오래 세월을 거쳐오면서 붉게 변한 것이다.
이미 생을 마치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곳.
고요한 산야에 생전예수재를 지내는 목탁소리가 절간 기둥을 휘감으며 울려 퍼지고 있다.
생전예수재는 살아있는 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써, 사후에 받게 될지 모를 과업을 미리 닦아낸다는 의미이다.
대원사를 돌아 나오는 길,
오른쪽으로 족히 5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수령이 250년 된 은행나무가 보인다.
그 세월동안 은행나무는 대원사의 모든 행적을 고스란히 지켜 보았으리라.
할 말은 많으나 묵묵히 초록빛으로 그 장엄함을 대신하는 나무를 보니, 노자 「도덕경」 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참으로 앎은 말하지 않는다.”

탈무드에서는 “말은 깃털처럼 가벼워 주워 담기 힘들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무는 나이테로만 고단한 삶의 무게를 보여줄 뿐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대원사를 벗어났으나 목탁소리는 여전히 귓전에 맴돈다. 산 자를 위한 기도와 죽은 자를 위한 기도.
신에 비하면 찰라를 사는 인간은 어찌 그리도 많은 죄를 지었길래 목탁소리 그치지 못할까.
찰라를 사는 인간사는 이리도 소란스러움이 많을까. 나무는 아낌없이 베풀 뿐 말로 하지 않는다.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사람이 사랑이 되는 날이 오겠지. 사랑이 있다면 모든 인간사의 고난과 고통은 눈처럼 녹아지고 물처럼 흘려내려 형체를 버릴 것을.
소인의 마음에 작은 깨달음이 피어난다.
SNS기자단 박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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